강원포럼] 화랑의 사선비와 강릉

<박도식 관동대 사학과 겸임교수>

얼마 전 신라시대 화랑의 사선비(四仙碑)를 한송정 인근 논둑에서 30여 년 전에 보았다는 주민의 증언이 보도되면서 강릉의 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화랑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랑도는 6세기 중엽인 진흥왕 때 청소년으로 조직된 수양단체로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거의 400년간 존속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화랑제의 실시목적은 “처음에 군신(君臣)이 인재를 알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겨 무리로 하여금 떼 지어 놀게 하여 그들의 행실을 살펴본 후에 천거하여 쓰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김대문이 `화랑세기'에서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로부터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부터 생겼다”고 하였던 것이다.

화랑의 수련 기간은 통상 3년이었다. 이들의 수련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도의로써 서로 연마하였다'고 한다. 이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르친 도의교육의 내용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진평왕(579~632년) 때 원광법사가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가르쳐준 세속오계에 나타난다.

둘째, 화랑도의 수련과정에서 `노래와 춤으로 서로 즐겼다'고 한다. 이는 화랑집단과 가악(歌)이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삼국유사'에는 화랑과 관련된 향가(鄕歌)가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향가 가운데 강릉지방과 관계 있는 것으로는 `한송정곡(寒松亭曲)'이 전해진다.

셋째, 화랑은 수련 중에 `산천을 찾아 노니는데 먼 곳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화랑들이 산수를 찾아 노닐 때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영동지방이었다. 그리하여 `택리지' 산수조에서는 “산수의 훌륭한 경치는 당연히 강원의 영동이 제일이다”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대도호부 누정조에서는 “우리나라 산수의 훌륭한 경치는 관동이 첫째이고, 관동에서도 강릉이 제일이다”고 하여 이곳의 산수를 격찬하였던 것이다.

'삼국유사' 미륵선화 미시랑 진자사조에는 최초의 화랑인 설원랑(薛原)의 기념비가 명주(현 강릉)에 세워졌다고 한다. 설원랑이 화랑으로 활약하던 진흥왕 때 경주에서 안변까지의 동해안 명승지는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화랑 가운데 문도가 가장 번성했던 화랑은 효소왕(643~702년) 때의 사선(四仙)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사선을 술랑·남랑·영랑·안상이라고 했다. 사선이 유람했던 동해안 일대의 유적지로는 금강산을 비롯하여 명사(鳴沙), 총석정, 선유담, 삼일포, 영랑호, 경포대, 한송정, 월송정 등에 이르는 명승지가 있었다. 사선과 관련하여 총석정의 사선봉, 삼일포 등의 지명이 생기고, 사선 중에서도 영랑과 관련된 지명으로 금강산의 `영랑봉'과 속초의 `영랑호'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화랑의 순례지 가운데 강릉의 한송정과 경포대는 필수적인 순례 코스였다. 경포대와 한송정에는 화랑이 차를 끓이던 차샘`茶泉'·돌아궁이·돌절구`石臼·석구' 등의 다구(茶具)가 조선 초까지도 전해지고 있었다. 다구가 남아 있었다는 것은 화랑집단의 수련장으로 강릉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한송정에는 지금도 돌우물`石井·석정'이 남아 있다.

이곡(1298~1351년)의 `동유기'에는 “위로는 원나라의 사신과 본국의 경사(卿士) 방백(方伯) 수령(守令)들로부터 아래로는 유람객에 이르기까지 귀천을 막론하고 반드시 이곳을 구경하려 하여 매양 저로 하여금 배로 인도하게 하였다”고 한다. 고려 후기 조선 초 문인들이 남긴 사선 유적에 대한 시(詩)나 기문(記文)이 적지 않게 전해지는 것도 많은 유람자가 한송정과 경포대를 방문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현재 설원랑의 비가 강릉 어느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이곡은 동해안 지역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인 `동유기'에서 총석정, 삼일포, 한송정의 3곳에 사선과 관계 있는 비가 있었다고 하였다. `강릉시민 화랑비 찾기운동'을 제언하는 것은 설원랑의 비와 사선비를 찾아 역사적으로 강릉지역이 화랑의 순례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데 있다.